
건설공사에서 하자가 발생하면 수급인이 흔히 내놓는 항변이 있다. 설계도면이나 시방서에 적힌 대로 시공했고, 도급인이 요구한 공법과 재료를 사용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급인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이 언제나 수급인의 하자책임을 면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6. 8. 18. 선고 2014다31691, 31707 판결은 건설전문가인 수급인이 도급인의 지시가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하자담보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669조는 목적물의 하자가 도급인이 제공한 재료의 성질이나 도급인의 지시로 발생한 경우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수급인이 재료나 지시가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도급인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면책되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공장부지 조성공사의 비탈면 석축이었다. 수급인은 전석 쌓기 방식으로 석축을 시공했는데, 해당 구간의 높이는 약 7m와 5.8m에 달했다. 감정 결과 해당 공법은 처음부터 선택이 잘못됐으며 안전성을 확보하려면 기존 석축을 철거하고 콘크리트 옹벽으로 다시 시공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급인으로서는 계약에서 정한 공법대로 공사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었다. 실제 계약서에도 보강토 쌓기를 발파석 쌓기로 견적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계약서에 특정 공법이 기재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수급인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토목·건축공사의 전문가인 수급인은 공사의 안전성과 견고성, 현장에 대한 공법의 적합성을 전문적으로 판단할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급인이 도급인의 요구가 기술적으로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대로 계약하고 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공법의 문제와 위험을 도급인에게 알리고 적절한 공법으로 변경하도록 요구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 판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수급인의 책임이 설계도면이나 시방서대로 정확하게 시공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법이나 재료가 현장 여건과 맞지 않아 하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면 전문사업자로서 이를 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도급인의 잘못된 지시로 발생한 모든 하자에 수급인이 책임을 부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급인이 당시 기술수준이나 현장 상황에서 문제를 알기 어려웠는지, 위험을 발견한 뒤 도급인이나 권한 있는 감리인에게 알렸는지 등 구체적인 사정을 함께 살펴야 한다.
실무에서는 이러한 고지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자료가 중요하다. 현장에서 담당자에게 구두로 문제를 전달하는 데 그치면 이후 분쟁에서 고지 여부와 내용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기술검토서나 설계변경 요청서, 감리단 제출 공문, 공정회의록 등으로 위험의 내용과 고지 시점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고지 내용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떤 공법이나 재료가 부적당한지, 예상되는 하자나 안전상 문제는 무엇인지, 대체할 수 있는 공법은 무엇인지 등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후 도급인이나 감리인이 어떤 판단과 지시를 내렸는지도 함께 기록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대법원 2014다31691, 31707 판결은 도급인의 지시와 수급인의 전문적 책임을 구분해 판단했다. 도급인의 지시가 하자의 원인이 됐더라도 수급인이 그 지시의 부적당함을 알고도 고지하지 않았다면 민법 제669조를 근거로 하자담보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법무법인(유한) 성지 파트너스 최승준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