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은 은밀한 장소나 사적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특성이 있어, 피해 직후 남겨진 기록과 정황자료가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현황에서도 불법촬영, 유포 협박, 합성·편집물 관련 피해가 지속적으로 확인되면서, 성범죄 증거 역시 단순한 신체적 증거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자료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단계로 변화하고 있다. 다만 성범죄 증거수집이 피해자에게 사건 입증의 모든 부담을 전적으로 지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폭력 피해 직후에는 의료지원과 증거 보존 가능성을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피해 발생 후 가능한 한 신속하게 법의학적 증거채취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을 씻거나 옷을 세탁하기 전이라면 피해 당시 착용했던 의복과 관련 물품도 보존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약물 피해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소변검사 등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 있어, 혼자 판단하기보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지털 자료도 중요하다. 카카오톡, 문자, SNS 메시지, 통화기록, 위치기록, 숙박 예약 내역, CCTV, 블랙박스 등은 피해 당시 상황과 전후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 불법촬영이나 유포 협박이 있었다면 게시물 화면, 계정 정보, URL, 업로드 시간, 대화 내용 등을 캡처하고 원본 자료를 삭제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이유로 상대방 계정에 무단 접속하거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하면 오히려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증거가 부족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에서 증거는 반드시 하나의 결정적 자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해 직후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병원 진료를 받았는지,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상대방이 이후 어떤 연락을 했는지 같은 자료들이 모여 사건의 전체 맥락을 구성한다. 따라서 기억이 흐려지기 전 날짜, 장소, 당시 상황, 상대방의 말과 행동, 이후 연락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성 피해자는 신고 이후에도 상대방의 회유, 사과, 협박, 합의 요구를 반복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대화를 삭제하거나 혼자 대응하다 보면 오히려 피해 정황을 설명할 자료가 사라질 수 있다. 성범죄증거수집은 피해자를 의심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피해자가 겪은 일을 법적으로 설명하고 보호받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성지파트너스 여울 여성특화센터 장예준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에서 증거수집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초기 자료가 사건의 방향을 크게 바꾸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 직후에는 해바라기센터나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아 의료기록과 디지털 자료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메시지·통화기록·진료기록·주변인 진술 등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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