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나 제작이 약정 기한보다 늦어졌다고 해서 지연된 기간 전체에 지체상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급인이 먼저 지급하기로 한 선급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면, 그 기간까지 수급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대법원은 선급금 지급이 늦어진 기간을 지체상금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2016년 12월 15일 선고 2014다14429, 14436 판결은 도급인의 선급금 지급 지체가 수급인의 납품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책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뤘다.
지체상금은 수급인이 약정한 기한까지 공사나 제작을 완료하지 못했을 때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이다. 일반적으로 계약금액에 약정 지체상금률과 지체일수를 적용해 계산하며,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지체상금 약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한을 넘긴 모든 기간에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수급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이행이 지연됐다면 해당 기간은 지체상금 발생기간에서 제외해야 한다.
특히 도급계약에서 보수 일부를 선급하기로 약정했다면 선급금 지급 여부는 수급인의 이행 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법원은 도급인이 보수 일부를 미리 지급하기로 한 경우 수급인은 선급금이 제공될 때까지 일의 착수를 거절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완성이 늦어졌더라도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이 사건은 건축공사가 아닌 금형 제작계약에서 발생했다. 도급인과 수급인은 2010년 11월 2일 계약을 체결하고 납품기한을 2011년 3월 15일로 정했다. 계약금액은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1억4천만원이었다.
계약에서는 전체 대금의 절반인 7천만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대금은 시운전 완료와 하자이행증권 제출 이후 지급하기로 했다. 납품이 지연될 경우 지체일수 하루당 계약금액의 1천분의 1을 지체상금으로 지급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하지만 도급인은 계약 체결 당시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0년 11월 30일 액면금 5천390만원의 약속어음을 교부하고, 같은 해 12월 2일 현금 2천310만원을 지급했다. 계약금과 부가가치세를 합한 7천700만원이 계약 체결 약 한 달 뒤에 지급된 것이다.
수급인은 약정 납품기한인 2011년 3월 15일보다 1개월 3일 늦은 4월 18일 금형을 납품했다. 도급인은 납품 지연을 이유로 지체상금을 청구했지만, 수급인이 책임져야 할 기간이 얼마인지를 두고 다툼이 발생했다.
쟁점 중 하나는 계약서에 ‘계약금’으로 기재된 돈을 선급금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지급금의 명칭만으로 법적 성격을 결정하지 않았다. 제작 대상이 도급인의 특별한 수요에 맞춰 제작되는 금형이고, 계약금이 전체 제작대금의 50%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따라 해당 계약금은 단순한 계약 체결의 증거금이 아니라 수급인이 자재를 확보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등 제작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미리 지급하는 보수의 성격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계약서에 계약금 지급일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사정도 문제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급금의 실질적인 성격과 계약 내용을 고려해 수급인이 계약 체결 무렵부터 선급금 지급 완료 시점까지 제작 착수를 거절할 수 있었다고 봤다.
결국 전체 납품 지연기간인 1개월 3일 가운데 선급금 지급 지체에 해당하는 1개월은 수급인이 책임질 수 없는 기간으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이를 제외한 3일에 대해서만 지체상금 지급의무를 인정한 원심 판단을 정당하다고 봤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부분은 지체상금의 감액과 책임기간의 공제다.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른 감액은 예정된 손해배상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 금액을 줄이는 문제다. 반면 이 사건은 수급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기간을 지체상금 계산에서 제외한 것이다.
따라서 선급금 지급이 늦어졌다는 사정이 곧바로 지체상금 전액 면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지급 지체기간과 수급인이 책임질 수 없는 기간을 구분해야 하며, 그 밖의 납품 지연에 대해서는 별도로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실무에서도 계약서상 지급금의 명칭만으로 판단해서는 부족하다. 지급금이 전체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 지급 목적, 자재 확보와 인력 투입에 필요한 자금인지 여부, 계약상 지급과 작업 착수의 관계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지체상금 산정에서는 약정 준공일이나 납품일뿐 아니라 선급금 지급 약정과 실제 지급 내역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계약서와 변경계약서, 계좌이체 내역, 어음 교부 및 결제 자료, 작업 착수 기록 등을 통해 각 의무의 이행 시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2014다14429, 14436 판결에서 실제 납품 지연기간은 1개월 3일이었지만, 지체상금 책임이 인정된 기간은 3일이었다. 선급금 지급 지체에 따른 1개월을 수급인이 책임질 수 없는 기간으로 판단한 결과다.
법무법인(유한) 성지 파트너스 최승준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