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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칼럼] 계약서 한 줄이 형사처벌로…일괄하도급 금지의 경계
- 내외경제TV
- 2026-04-07
사진 :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승준 대표변호사
건설현장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하도급 구조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계가 보다 선명해졌다. 공사 수행 방식의 선택 문제가 단순한 행정 규제 차원을 넘어 형사책임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 최근 판결을 통해 재확인됐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 제1항은 건설사업자가 도급받은 공사의 전부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부분의 대부분을 다른 건설사업자에게 넘기는 이른바 일괄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같은 법 제96조 제4호는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사 책임을 명확히 하고 부실시공, 안전사고, 다단계 재하도급에 따른 구조적 문제를 차단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
현장에서는 원도급자가 공사를 직접 수행하기보다 여러 업체에 나눠 맡기고 전체를 관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법은 원도급자가 공사를 계획·관리·조정하면서 2인 이상에게 분할해 하도급하는 경우를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예외와 일괄하도급 금지 사이의 경계다. 계약서 형식과 실제 수행 구조가 다르게 설계되는 경우 위법 여부 판단이 쟁점이 된다.
부산고등법원 (창원)2021노72 판결은 이러한 경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피고인들은 건설공사를 도급받았다고 주장하며 발주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사 수행 구조는 달랐다.
공사 대금의 흐름, 실제 시공 주체, 현장 운영 방식 등을 종합한 결과 피고인들은 공사를 직접 수행하거나 관리·조정할 의사와 능력을 갖추지 않은 채 형식적 원도급자 역할만 맡은 것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실질적으로는 특정 업체에 공사를 넘기는 구조를 사전에 설계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발주자에게는 직접 시공할 것처럼 설명하고 계약을 체결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법원은 이를 기망행위로 판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를 인정했다. 동시에 공사 전체를 사실상 넘긴 구조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상 일괄하도급 금지 위반도 함께 인정했다.
이 사건은 일괄하도급 위반이 단독으로 문제된 것이 아니라 사기와 결합된 형태로 판단됐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피고인들이 제출한 자료에는 시공 능력과 직접 수행 의사가 강조돼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공사 수행을 제3자에게 일임하는 구조가 이미 설계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설명과 실제 계획 사이의 괴리를 중요한 판단 요소로 삼았다.
일괄하도급 금지 위반죄의 성립 시점과 관련해서는 대법원 2021도15681 판결이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건설사업자가 공사의 전부 또는 주요 부분의 대부분을 일괄해 하도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시점에 이미 위반행위가 완성된다고 판단했다. 실제 공사가 착공됐는지 여부는 범죄 성립에 필수 요소가 아니라고 봤다. 계약 체결 자체가 금지된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기준은 앞선 부산고등법원 사건과 같은 유형에 직접 적용될 수 있다. 공사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계약 구조 자체가 일괄하도급에 해당하면 형사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계약서상으로는 분할하도급 형태를 취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특정 업체에 공사 대부분이 집중되는 구조라면 위법 판단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무에서는 공사 계획 단계부터 구조 설계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도급자가 공사의 계획·관리·조정 기능을 실제 수행하는지 여부가 핵심 기준으로 작용하고, 하도급 범위와 역할 분담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정 하수급인에게 공사 대부분이 집중되는 경우 일괄하도급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쟁점은 명의대여나 무등록업체가 개입된 구조다. 등록 건설업자의 명의를 빌려 공사를 수주하고 실제 시공은 무등록업체가 맡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겉으로는 여러 업체가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한 업체가 공사를 전부 수행하는 경우 일괄하도급 위반과 함께 무등록 시공 문제까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판례에서는 이러한 경우 실질 지배력과 자금 흐름, 위험 부담 주체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단순히 계약서상의 형식이나 명칭이 아니라 실제 공사 운영 구조가 판단 기준이 된다. “우리는 관리만 했다”는 주장 역시 공정관리 수행 여부, 인력 투입, 책임 부담 등을 종합해 엄격히 검토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일괄하도급 위반이 인정될 경우 형사처벌 외에도 행정처분과 민사책임이 함께 발생할 수 있다. 영업정지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고, 발주자는 계약 해제나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수 있다. 사기죄가 함께 인정되는 경우에는 재산상 이득액 규모에 따라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사례도 나타난다.
최근 판결들은 공사 착공 이후의 운영 문제보다 계약 단계에서의 구조 설계 자체를 중시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공사 수행 방식이 법 위반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면서, 계약 체결 이전 단계에서의 법률 검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승준 변호사
기사원문 : https://www.nb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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