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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퇴직금청구권포기약정, 작성 시점에 따른 엇갈린 결과
- 내외경제TV
- 2026-06-24
[칼럼] 퇴직금청구권포기약정, 작성 시점에 따른 엇갈린 결과
퇴직 과정에서 작성되는 퇴직금 포기 각서나 합의서는 노동분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쟁점 중 하나다.
많은 근로자들은 “퇴직금 포기 각서에 서명했는데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묻고, 사용자들은 “퇴직 후 작성한 합의서로 분쟁을 종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대법원 2018다21821 판결은 이러한 쟁점이 실제로 문제된 사례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일정 기간 계속 근로한 뒤 퇴직할 경우 지급받는 후불적 임금의 성격을 가진다. 법적으로는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퇴직’이라는 사실이 발생해야 비로소 구체적인 퇴직금 청구권이 생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퇴직금 제도를 강행규정으로 두고 있으며,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미리 포기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오랫동안 퇴직금 사전 포기 약정은 무효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입사 당시 작성한 퇴직금 포기 각서, 재직 중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해 지급하기로 한 약정, 퇴직 시 별도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부제소특약 등은 모두 강행법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당사자가 자필로 작성하거나 서명·날인을 했더라도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미리 포기하게 하는 약정은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그러나 대법원 2018다21821 판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전 포기와 사후 포기를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사건에서 근로자는 퇴직 당시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고, 퇴직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회사와 퇴직금 관련 각서를 작성했다. 사용자는 해당 각서를 근거로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고, 근로자는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라고 다퉜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핵심을 ‘약정이 체결된 시점’에서 찾았다. 문제가 된 각서는 근로자가 이미 퇴직한 이후 작성된 것이고, 당시에는 퇴직금 청구권도 이미 발생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해당 약정을 장래 발생할 퇴직금 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사전 포기 약정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권리를 처분하는 사후 포기 약정으로 평가했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이미 퇴직하여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퇴직 시 발생한 퇴직금 청구권을 나중에 포기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으며, 이를 강행법규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퇴직 후 체결된 해당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사용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판결은 퇴직금 제도의 강행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권리에 대한 사적 자치의 영역을 일정 부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퇴직 전 단계에서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행규정이 우선하지만, 퇴직 이후에는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처분할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이 판결이 모든 퇴직 후 합의서의 효력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법원은 약정 체결 시점뿐 아니라 체결 경위와 내용, 대가관계, 근로자의 의사 형성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퇴직금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별도의 금전적 보상을 받았는지, 회사가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 약정 체결이 사실상 강요된 것은 아닌지 등이 모두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퇴직 후 작성된 문서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재직 중부터 예정된 퇴직금 포기 약정에 불과하다면 무효로 평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무에서는 사용자가 퇴직 이후 포괄적인 분쟁 종결 합의서를 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퇴직금과 임금, 각종 수당 문제를 한 번에 정리하기 위해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서는 해당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 향후 권리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특히 퇴직금 대신 다른 명목의 금원이 지급되거나, “향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에는 더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퇴직 후 작성된 합의서라 하더라도 그 법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명했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사후 포기 약정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 근로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검토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숙려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향후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된다. 일방적으로 작성한 양식에 서명만 받는 방식은 오히려 약정의 효력을 둘러싼 추가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
대법원 2018다21821 판결은 퇴직금 사전 포기 약정은 무효라는 기존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미 발생한 퇴직금 청구권에 대한 사후 포기 약정은 유효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해당 약정이 퇴직 전의 사전 포기인지, 퇴직 후의 사후 포기인지, 그리고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권리 처분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별은 향후 퇴직금 분쟁에서 계약의 효력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계속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승준 대표변호사
기사원문 : https://www.nb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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